소장작품이야기

(三陟 陟州東海碑 삼척 척주동해비:삼척부사 미수허목)

금석 로석 옛돌 2022. 4. 8. 14:03

척주동해비는 삼척부사 허목(許穆)이 세운 비석으로, 허목이 부사로 재임하고 있던 당시(1660~1662) 조류(潮流) 및 홍수로 주민들의 피해가 극심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이 자연재해를 예방하고 백성들의 피해가 없기를 기원하며 동해송(東海頌)을 짓고 전서(篆書)로 비문을 써서 만리도(萬里島)에 세운 것이다.

조수(潮水)를 물리치는 위력이 있는 신비한 비석이라 하여 일명 퇴조비(退潮碑)라고도 불린다. 이후 1708년(숙종 34) 풍랑으로 비석이 부러져 바다에 잠겼던 것을 숙종 35년 부사 홍만기(洪萬紀)가 본떠 다시 새겼으며, 숙종 36년 부사 박내정(朴乃貞)이 죽관도 동쪽에 다시 건립하였다가 1969년 현재의 위치인 육향산 정상에 옮겨 세웠다.

대한평수토찬비의 비문은 삼척부사 허목이 지은 것으로, 중국 형산비(衡山碑)의 대우수전(大禹手篆) 77자 가운데 48자를 모아 목판에 새긴 것이다. 그 내용은 임금의 은총과 수령으로서 자신의 치적을 기린 글이다.
오랜 기간 읍사(邑司)에 보관되어 오던 것을 1904년(광무 8) 칙사(勅使) 강홍대(康洪大)와 삼척 군수 정운석(鄭雲晳) 등이 고종의 명을 받아 돌에 새겨서 죽관도(현재의 위치인 육향산)에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척주동해비와 대한평수토찬비는 전서체의 대가로 알려진 허목의 글씨로 새겨져 중국의 글씨와 뚜렷이 구별되는 창조성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자료이다.

척주동해비는 현재 전면에 ‘척주동해비각(陟州東海碑閣)’, 후면에 ‘동해비각(東海碑閣)’이라고 쓴 제액(題額)이 걸려있는 비각 안에, 대한평수토찬비는 현재 전면에 ‘우전각(禹篆閣)’이라고 쓴 제액이 걸려 있는 비각 안에 세워져서 보존되어 오고 있다.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동해시청 공보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