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작품이야기

惺堂金敦熙 서예작품 감상

금석 로석 옛돌 2022. 5. 21. 15:32



김돈희 金敦熙
시대조선 말기 ~(1871. 7. 15. ~ 1936)
직업문신, 서예가
조선 말기~근대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공숙(公叔), 호는 성당(惺堂), 본관은 경주이다.

가계는 대대로 중인출신으로 6대 조부는 역과, 5대 조부는 무과, 고조부로부터 조부까지는 운과1) 출신이었으며, 부친인 김동필(金東弼)은 사자관이였다.

학습과정은 1878년 7세 때부터 부친에게서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1880년 9세 때에는 한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였다.

부친과 조부를 통해 한학과 시문학을 토대로 많은 독서와 함께 문학적인 소양을 길렀고 조부가 문장에 능했던 만큼 큰 영향을 받아 조부의 시집인 『연파시초(蓮坡詩抄)』를 직접 편집하기도 하였다.

1887년 16세에는 법관 양성소에 입학하여 법률서적을 가까이 하며 법관으로서 자질을 키워갔다.

이러한 서예 학습 과정을 통해 한학을 바탕으로 근대의 학술과 문장을 익혀 지식체계를 형성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서화를 통해 탁월한 예술세계를 형성하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었다.

관료생활은 1895~1903년까지 계속되어 검사 · 주사 · 참의 등을 거쳐, 주전원주사(主殿院主事) · 전라남도검사 · 내각서기랑서판 · 내각주사 · 정삼품통정대부 · 조선총독부위원 · 금석문편찬사로 근무하면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공직생활 중 학문에 대한 열의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금석문편찬사로 근무하며 『조선금석총목(朝鮮金石總目)』 제작에 동참하였으며, 예술활동도 겸하여 중년 이후에는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18년 한국 최초의 근대 미술가 단체인 서화협회가 창립될 당시 13인의 발기인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일제 치하에서 민족문화를 고수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의지를 보였으며, 1922년에는 서화협회 4대 회장에 취임하여 서화협회의 주요 사업인 '신구서화계의 발전'과 '동서미술의연구', '향학후진(向學後進)의 교육 및 공중(公衆)의 고취아상(高趣雅想)의 증진'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사업으로 휘호회(揮毫會)와 전람회, 의촉제작(依囑制作), 도서인행(圖書印行), 강습소(講習所) 운영 등을 추진하였다.

특히 당시 중추원에서 글씨 쓰는 일과 서화협회 일을 맡고 있으면서도 롯데호텔 우측에 자리한 한옥집에 상서회를 열어 매주 금요일 오후에 후학들을 지도한 후학양성에 대한 열의로 인해 근현대 서화가인 손재형과 장우성, 전북의 여류작가였던 김진민 등 걸출한 대가들을 배출하였다.

이러한 예서의 성취에 비하여 전서는 서주(西周)의 금문(金文)이나 진(秦)의 을 임서하기도 하고, 오(吳)의 를 집자하여 쓴 것이 보이는 정도이다.

♥華山 李聖儀씨는 ( ~1965)
일제시대부터 화산서림(華山書林)이란 고서점을 경영하여 고전자료에 대한 안목이 높고 경험이 풍부한 분이다. 그는 고서사(古書肆)의 경영이 생업이었지만, 결코 상리(商利)에만 집착하지 않고 우리의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을 소중하게 여겨 초간(初刊) 또는 선본(善本)과 오래된 희귀본(稀貴本)이라면 별도로 간직하여 소중하게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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