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작품이야기 38

서예가 백당정헌기 비문탁본 일시:2023,4,9 장소:함안 여항 주최:경남서예총연합회 탁본주재:초람박세호

백당(白堂) 정기헌(鄭基憲)1886~1956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며 서예가이다. 1886년 현 경상남도 창원시 상남면 봉림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민족의식이 투철하고 배일사상이 철저 하였으며 고향에서 한문을 수학한 후 서울에 상경하여 기독청년회에서 수학하였고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의 문인이 되었으며, 교남학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상해임시정부의 조직원 조완구(趙琬九)선생과 교분을 가지며 독립운동 동지들 뒷바라지에 선대의 재산을 자금으로 기탁하였다.이후 일본 경찰에 구인되어 고문을 당하는 곤욕에서도 끝내 함구하였다. 1921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열강들의 군축회의 일명 태평양회의에 국민공회 대표 이상재(李商在)와 양기탁(梁起鐸)을 필두로 국내 종교계 및 사회단체 대표와 전국 13도 260군 대..

大汕 惠鳳스님

대산 이혜봉 대종사 스님(1918-2000) 15세 이전 사서삼경 독파 평양사범학교 졸업 고종조(高宗朝)에 정4품 관직 일붕 서경보 존자 수하에서 득도 삼론종 초대 종정 순천 선암사에서 2000년 열반할 때까지 평생을 자라방석을 만들어 공양을 한 스님이다. 법명은 대산(大汕). 대한불교삼론종(大韓佛敎三論宗) 종정. 대한불교삼론종(大韓佛敎三論宗)은 인도 대승불교의 중관계(中觀系) 유가계(瑜伽系) 중의 중 관계에서 시작하여 중국에서 번성한 학파(學派)이다. 교조는 석가세존이며 종조는 석가세존으로부터 연원된 대승교법을 상승한 문수, 마명, 용수보살, 및 구마라습 삼자의 법맥을 사승하여 중국불교를 일통 하였던 고구려 승랑조사(僧郞祖師)이며 끊겼던 삼론의 맥을 이어 1989년 대산(大汕) 이혜봉(李惠鳳 : 불기 ..

파성설창수

설창수 巴城 薛昌洙 언론인·문화예술인 1916~ 1998년 6월 26일 (83세) 창원에서 출생. 1931년 진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TK단에 가담, 활동하다가 체포, 광복 이후 경남일보 주필·사장 개천예술제를 개최등 60여 년간 진주지역 문화예술계에 지대한 공헌. 니혼대학[日本大學] 법문학부 예술과를 중퇴. 1946년 『경남일보』 주필·사장을 역임, 좌익문학단체에 대응하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 1949년 영남예술제(1959년 개천예술제로 변경)를 창시하여 1960년 제11회까지 위원장을 역임. 1960년 참의원에 당선되었으나 5·16군사쿠데타로 정계를 떠났고, 이후 독재타도, 민주화운동 1951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223여 회와 1972년 일본에서 2차례의 시화전을 개최하는 ..

秋田金禾洙

蘭畵감상 無遷大香/갑자년 작 괴석 묵란감상 秋田 金禾洙(추전김화수) 서화가는 사천시의 전통 유교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한학자이자 서예가 사천의 다솔사 인근에서 추전서당을 열어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작품은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에도 소장 민속씨름 천하장사 왕죽도(王竹圖) 부상으로 수여 장흥의 보림사 일주문 현판

고천 배재식선생 작품감삼

배재식(裵在植)[1931~2011] 호는 고천(古泉) 수정실주인(水晶室主人) 1931년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출생 1951년 진주사범학교[현 진주교육대학교]를 졸업 부산 동일초등학교 교장을 역임 부산대학교·한국해양대학교·부산여자대학[현 신라대학교]강의 1975년 지방 작가 초대전, 1976년 현대 미술 대전에 참여 부산시 문화 위원, 부산시 문화재위원, 부산 미술 전람회·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의 심사 위원역임 부산미술협회 이사장·한국서예협회 부산지부장·한국서가협회 부회장 역임 1976년 충장공 정발 장군, 충렬공 송상현 동상, 충렬사 정화 공사 기록화의 고증 위원을 역임하였다. 배재식은 청나라 때 명필 황산곡(黃山谷)의 서체에 자신의 서법(書法)을 가미시킨 독특한 서법으로 부산 서예계에 명성을 날렸다. ..

정진성스님

청주 서기사(淸州 瑞氣 소재지 : 청주시 율량동 산91번지 서기사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서기사(瑞氣寺)는 신라말기부터 있었던 사찰로서 여승들이 수행하든 사찰로 전해왔으며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으로 거의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약사 여래 부처남은 고려말부터 모셔왔던 불상중 유일하게 보존되여 있는 불상이다. 서기 1929년 (불기 2473년)에 호암(虎庵) 손순덕(孫順德) 보살이 법당을 재건하였으며 서기1959년(불기 2503년)에 현(現) 보현(普賢) ♥정진성(鄭鎭成) 스님이 주지로서 서운암(瑞雲庵)이라 칭하여 포교중이며 근래 조선조 당시 랑성지(琅城誌) 년감(年鑑)에 의하면 서운암이 아니고 서기암(瑞氣庵)이라 기재돼 있음을 발견 옛 뿌리를 찾아 서기 1990년 5월 30일자(불기 2534년) 서..

석촌윤용구 서예감상

平生不作皺眉事, 世上應無切齒人. 평소 남에게 눈살 찌푸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응당 이를 갈며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853(철종 4)∼1939. 문신, 서화가. 자 주빈(周賓), 호 석촌(石村), 해관(海觀), 수간(睡幹), 장위산인(獐位山人) 1853년(철종 4) ~ 1939년 문신, 서화가 대표관직(경력)예조판서, 남녕위 의선(宜善)의 아들이다. 1871년(고종 8) 직장(直長)으로서 문과에 등제하여 벼슬이 예조·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로 법부·탁지부·내무부 등 대신에 십수회 배명(拜命)받았지만 취임하지 않고 서울 근교의 장위산에 은거하면서 ‘장위산인’이라 자호하였다. 한일합방 후 일본 정부에서 남작을 수여하였으나 거절하고 서화와 거문고, 바둑으로 자오(自娛)하..

松谷 安圭東 전서작품 감상

臨溪茅屋獨閑居 임계모옥독한거 ♥月白風淸興有餘 월백풍청흥유여 外客不來山鳥語 외객불내산조어 移床竹塢臥看書 이상죽오와간서 개울가에 초가집 지어, 한가히 홀로 사니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즐거움이 넘친다. 손님이 찾지 않아도, 산새들이 속삭여주고 대나무 언덕으로 평상을 옮겨, 누워서 글을 읽는다. 야은 길재詩 ♥月白淸風/달밝고 바람맑아 송곡 안규동(1907. 12 ~ 1987. 12. 9) 箕山 牟受明 (박문회,송운회,안규동)사사 #송곡안규동 #월백풍청 #작품소장

성파하동주 서예작품감상

영남(嶺南)의 서예대가!! "至誠報國" "지극한 정성으로 나라에 충성을 다하라" 성파(星坡) 하동주(河東洲 1869~1943) 선생은 거제면 동상리 출신으로, 호(號)가 성파(星坡)이다. 1869년 2월1일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437번지 진양인(晋陽人) 하지호(河志灝 1827~1886)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성파(星坡)는, 경남 마산 진주 등으로 나가서 명성을 떨쳤고 1943년 11월5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결같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글씨체를 써 온 동양의 명필이셨다. 남긴 글씨는 합천 해인사,함벽루,촉석루, 영남루 등 사찰의 현판과 주련과 고성 개천면 청광리 박부잣집(朴進士) 객실등에 있다. 거제시 사곡 삼거리에 성파 선생의 묵적비(墨蹟碑)를 묵적비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1989년 11월1..

惺堂金敦熙 서예작품 감상

김돈희 金敦熙 시대조선 말기 ~(1871. 7. 15. ~ 1936) 직업문신, 서예가 조선 말기~근대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공숙(公叔), 호는 성당(惺堂), 본관은 경주이다. 가계는 대대로 중인출신으로 6대 조부는 역과, 5대 조부는 무과, 고조부로부터 조부까지는 운과1) 출신이었으며, 부친인 김동필(金東弼)은 사자관이였다. 학습과정은 1878년 7세 때부터 부친에게서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1880년 9세 때에는 한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였다. 부친과 조부를 통해 한학과 시문학을 토대로 많은 독서와 함께 문학적인 소양을 길렀고 조부가 문장에 능했던 만큼 큰 영향을 받아 조부의 시집인 『연파시초(蓮坡詩抄)』를 직접 편집하기도 하였다. 1887년 16세에는 법관 양성소에 입학하여 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