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작품이야기 38

강암송성용

강암송성용 (1913∼1999) 현대의 서예가 전라북도 김제(金堤) 출생. 호는 강암(剛菴). 유재(裕齋)송기면(宋基冕)의 아들이다. 일찍이 한학(漢學)에 입문하여 문리(文理)를 터득하였으며, 서법(書法)과 그림에 취미를 가져 일가를 이루었다. 학문과 범절을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아 보발(保髮)을 고집하고 양복(洋服)을 입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일제강점기 때에는 창씨개명과 신학문을 반대하는 생활로 일관하였다. 서법에 있어서 그는 다양한 서체를 구사하였으며, 그림은 문인화를 주로 그렸다. 그의 문하에 유능한 제자들이 많았는데, 주로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암송성용

유하 유영완 선생의 매화

묵향 깊이 살다간 유하 기리며 전주 솔화랑 '전북서화의 맥 연작전2: 유하 유영완' 특별전 기사 작성: 이종근 기자 - 2014.09.14 19:08 '전북서화의 맥 연작전2;'유하 유영완'전을 갖는다. 석정 이정직(1841-1910)의 문하에서 공부한 유하 유영완(1892-1953)은 김제 출생으로 이미 20세에 이르러서는 청년 명필로 그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나라 국필로 알려진 위창 오세창은 청년 유영완의 글씨를 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유영완은 전북의 근.현대 서화의 흐름 속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해 온 인물이다. 그의 위치는 사실 전북의 서화에서 만이 아니라 한국 근. 현대 서화의 중심에 놓아도 손색이 없다. 때문에 전북미술사에서 문인화가로서 꼭 짚고 넘어가야할 인물이기도 한, 유..

지운김철수 (독립운동가)

遲耘 金錣洙 (1893~1986) 가로35cm 세로137cm 독립운동가 지운 김철수선생님의 명작품 지운 김철수는 전북 부안 백산에서 태어난 뒤 1912년 젊은이들의 유학을 독려하는 독립지사 성우 이명직 선생이 돌린 사발통문을 보고 감화되어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학과에 유학하였고 1915년 9월 7일 이명직 선생이 일제에 독살 당한 소식을 듣고 독립운동에 투신 1915년 '열지동맹(裂指同盟)' 1916년 '곡귀단(哭鬼團)'과 '신아동맹단(新亞同盟團)'을 조직하였다[1]. 우범선의 아들 우장춘에게 한국을 선택하도록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의식화 시킨 장본인 이다[2]. 일본과 러시아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과 코민테른 등 사회주의활동을 벌였다. 그는 한국 초창기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고 해방공간에서 좌익과 우익의..

白浦곽남배의 비파1점

백포 곽남배 화백 1929~2004년 비파1점 1986년 작 강인한 작가정신의 소유자, 한국화의 대가로 60~70년대 국전을 통하여 한국 화단에 널리 알려진 백포 곽남배 화백.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욕과 정열과 투철한 신념으로 초인적인 제작 의욕을 보여 감탄을 자아 내게 한다. 미술과 음악이 현대문명의 불치병을 고치는 데 큰 몫을 한다는 말처럼 詩作과 더불어 작품제작을 해온 백포 곽남배 화백은 풍류와 멋과 관용과 여유, 해학과 기지를 함축하고 있는 서정적 작가로 한국 화단의 원로이다. 전남 진도 출생으로 조선대 미술학과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화단에 등단, 국전을 통하여 데뷔한 백포 화백은 많은 수상 경력과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백포 곽남배 선생님은 눈부신 활약으로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효봉스님서예 "佛"(1888~1966)

상구보리하화중생 上求菩提下化衆生 위로 보리를 추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으로, 보살의 수행 목표를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측면으로 표현한 불교교리 위 작품의 佛은 효봉스님(1888~1966)의 작품으로 보인다. 佛자는 하단에는(曉峰)효봉이라는 인장이 찍혀있다. 봉자는 뒤져올(夂)가 빠져있어 자료를 찾아보니 빠져있는자형이 자전에 몇자가 보인다. 두인:億佛修仁 #효봉스님 #효봉스님서예 #효봉스님 佛

蘭!! 어느분 작품일까요?

1974(갑인년)작 錦心 李康淑 作 sns가 활발하지 못했던 시절의 작품이다. 뢰뢰기괴석(磊磊幾塊石) 겹겹이 쌓인 몇 개의 돌멩이 복복수지란(馥馥數枝蘭) 향기 그윽한 몇 가지의 난초 사득기중의(寫得其中意) 그 안의 의미를 그려 얻으니 유정재필단(幽情在筆端) 그윽한 정이 붓 끝에 있구나. 우연하게 나의 손에 들어 왔지만 어느분 작품인지는 알수 있으나 어디에 사시는지 모르겠네요.^^~~♡ 난은 유곡가인(幽谷佳人) 혹은 군자지향(君子之香)으로 표현하여 선비의 맑고 아름다운 자태와 은자(隱者)의 그윽한 품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고 초나라의 충신인 굴원(屈原)을 기려 선비의 결백함과 우국충정의 지조를 상징한다. 그리고 역경의 계사전(繫辭傳)에서는 ‘두사람의 마음이 같으면 그 예리함이 쇠와 돌을 자를 수 있고,..

吾無 金鎭榮

오무 김진영 화백 '묵죽도(墨竹圖)' 2점 (1932~2004) 1970∼80년대 목공예와 문인화로 명성을 떨친 오무(吾無) 김진영 화백은 1932년, 당시 정읍군 칠보면에서 출생한 고(故) 오무선생은 칠보국교와 신태인상고를 졸업한 후 칠보발전소 부속병원에서 근무한 것을 인연으로 전주도립병원에서 3년, 그리고 임실보건소에서 보건소장 직무대리로 10여년간을 근무했다. 보건소에 몸담으며 취미삼아 서예와 목각을 시작한 선생은 미술인들로 부터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 33세때 강원도 속초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목공예에 정진하게 된다. 이후 속초에서 15년간 살면서 3번의 목각전시회를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 후 1979년 김제로 터전을 옮겨 둥지를 틀었다. 김제에 정착한 선생은 23회의 개인전을 비롯 수..

우석 김봉근 반야심경10폭

우석 김봉근(1924~1994) 한산대첩기념비의 글씨는 우석김봉근 선생이 썼다 이충무공의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979년에 세워진 비석이며 한산대첩기념비라 쓴 정면 제목은 박정희 대통령이 썼고, 비문의 글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지었다. 내용은 1592년 7월 8일과 10일에 있었던 한산대첩을 서사시풍으로 표현했다. 비석의 높이는 20미터이다. 우석 김봉근은 중국 청나라 말기 서예가인 조지겸(趙持謙), 오양지(吳讓之) 등의 전서(篆書)[전서는 넓은 뜻으로는 예서 이전에 있는 서체로 갑골문·금문·석고문·육국고문·소전·무전·첩전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좁은 뜻으로는 대전과 소전이 주축이 된다.]를 선보였는데 전서의 단아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표현하여 전서 서예 작품의 격을 한층 더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

취운 진학종 초서10곡"애련설" 감상

1998년작 10폭 애련설이다. 원문과 해설 水陸草木之花에 可愛者가 甚蕃하나 晉陶淵明은 獨愛菊하고 自李唐來로 世人이 甚愛牡丹이라. 予獨愛蓮之出於泥而不染하고 濯淸漣而不夭하며 中通外直하고 不蔓不枝하며 香遠益淸하고 亭亭淨植하여 可遠觀而不可褻翫焉하노라. 물과 육지에서 피는 초목의 꽃 가운데에는 사랑스러운 것들이 매우 많으나,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당나라 이래로는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매우 사랑하였다.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어 있고 밖은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치지도 않으며,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고 우뚝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함부로 하거나 가지고 놀 수 없음..